서.북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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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원리오층석탑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 용담정

    천도교의 교조 최재우가 무극 대도인 천도를 깨달은 곳이다.

  • 성산서당

    통정대부를 지낸 바 있던 정래영이 정극후(1577∼1658)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14년(1814)에 세운 사우와 서사(書社)였다. 사우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고, 지금은 서사만 남아 있다. 최근에 서사를 서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

  • 진덕여왕릉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의 무덤이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2번째 여왕으로 본명은 승만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과 월명부인 ...

  • 오류리등나무

    등나무는 덩굴식물로 꽃은 보통 가지 끝에 달려서 나오고, 5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핀다. 오류리의 등나무는 4그루가 있는데, 2그루씩 모여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1∼12m, 둘레는 각각 0.24m, 0.28m,1.72m, 0.60m정도 되는 큰 덩굴...

  • 손순유허비

    42대 흥덕왕떄 효자로 이름 높았던 손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유허비이다. 손순이 아내와 품을 팔며 어렵게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린 아들이 번번히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손순은 "아이는 다시 얻을수 있지만,...

  • 수재정

    조선 중기 학자인 정극후(1577∼1658)의 별장이라 전한다. 조선 광해군 12년(1620)에 세웠으며 영조 4년(1728)에 다시 지었다. 높은 석축 위에 자리잡은 3칸 규모의 정자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

  • 유연정

    유연정은 안동 권씨 종중에서 조선 순조 11년(1811)에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고려 때 높은 스님 권행과 권산해, 권덕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받아 운곡서원에서 약 50m 떨어진 동쪽 계곡의 용추...

  • 이씨삼강묘비

    다산리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이희룡 장군과 그의 아들 이문진 및 며느리 김씨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이희룡은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호위하였으며, 영남의 적을 정찰하라는 왕명을 받고 임무를 마치고...

  • 삼괴정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방린과 유린, 광린 3형제를 기리기 위해 순조 15년(1815)에 세운 정자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ㅗ자형으로 방과 대청, 대청 뒤로 2칸의 마루가 연결되어 있으며 출입은 뒤쪽 마...

  • 귀래정

    조선 영조 31년(1755)에 여강 이씨 천서문중에서 지은 건물이다.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좌랑,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 검교를 지낸 바 있는 이철명(1495∼?) 선생을 추모하여 1930년에 귀래정으로 하였다. 귀래정은 육각평면...

  • 종덕재

    조선 영조 33년(1757) 창녕 조씨 시조인 태사공 조계룡의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창녕 조씨 대종회에서 1929년 다시 수리하였으며, 한국전쟁으로 일부 피해는 있었으나 다시 고쳐 보존하고 있다. 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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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강서원

    익재 이제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학자로서 이제현은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을 수용·발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문학 부문에서도 그는...

  • 흥덕왕릉

    신라 제42대 흥덕왕(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무덤제도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 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경휘)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이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 안강읍회화나무

    회화나무는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들여와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특히, 회화나무는 활엽수 중 공해에 가장 강한 나무로 가로수...

  • 옥산세심마을

    자연과 인간의 조화도 배우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절이 어떤 것인지도 배울수 있는 농촌마을 체험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전국에 있는 농촌관광 500여개 가운데 에서 고개고가 주민 만족 실적면에서 모두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 정혜사지십삼층석탑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 독락당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

  • 옥산서원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이곳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 다음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

  • 양동민속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대문벌로 이어 내려온 동족마을로 경주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동북 포항쪽으로 40리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안강평야에 풍수지리상 재물복이 많은 지형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제법 큰 양반 ...

  • 김유신장군묘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이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

  • 신선사마애불상군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

  • 여근곡

    선덕여왕의 총명함과 슬기로움을 전해주는 세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하나가 옥무곡에 매복해 이던 백제 병사들을 물리 쳤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나온 옥문곡은 산의 생김새가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다 하여 '여근곡'이라 불린다. 어느날...

  • 용명리사지삼층석탑

    명장리삼층석탑’이라 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용명리사지탑’이라는 이름 역시 확실하지 않다. 석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가...

  • 금척리고분군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

  • 서악리마애석불상

    선도산 정상 가까이의 큰 암벽에 높이 7m나 되는 거구의 아미타여래입상을 본존불로 하여, 왼쪽에 관음보살상을,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상을 조각한 7세기 중엽의 삼존불상(三尊佛像)이다.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 아미타여래입...

  • 두대리마애석불입상

    경주 벽도산의 서쪽을 향한 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을 조각한 마애불(磨崖佛)이다. 이 불상은 가까운 곳에 있는 굴불사지 석불상(보물 제121호)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

  • 법흥왕릉

    신라 23대 왕인 법흥왕(재위 514∼540)의 무덤이다. 법흥왕은 신라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완성시킨 왕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하였고, 520년 율령을 반포하였다. 532년 금관가야와 합병하여 낙동강유역에 처음 진...

  • 효현리삼층석탑

    탑이 세워진 이 터는 신라 법흥왕이 죽기 전까지 승려로서 불도를 닦았다는 애공사(哀公寺)가 있었던 곳이라 전해오기도 하지만 주변이 논밭으로 변하여 사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 김양.김인문묘

    무열왕릉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기의 고분이 있다. 큰 것이 김인문의 묘이고, 조금 작은것이 김양의 묘이다. 김인문은 무열왕의 둘째 아들 당나라에 머문 기간만 무려 22년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대당 외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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