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 55 사적 187호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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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화 | |
입장료 | 무료 |
교 통 (버스) | 10, 11, 600~609 |
주차장 | 통일전 주차장이용 |
서라벌의 번영을 이야기 할때 17만8,936호 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흔히 인용된다. 이떄가 태평성대였던 49대 헌강왕(875~886) 시절이다. 헌강왕이 왕위에 있는 동안 신라는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태평성대였다고 한다. 동해 용신의 아들인 처용에게 미녀를 짝지어준 것도 헌강왕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느껴지는 헌강왕의능은 둥근 봉토 무덤인데, 무덤밑 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아 봉토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 모습이 독특하다.
능 내부는관이 놓여있는 방과 연결된 통로가 ㄱ자로 연결돼 있다. 내부 구조와 출토유물등이 8세기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 양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시기를 감안할 때 과연 헌겅왕릉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곳을 헌강왕릉으로 추정하는 것은 <삼국사기>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구절 때문이다.
헌강왕은 중매쟁이
개운포(지금의 울산) 바다로 나갔는데, 갑작스레 천지가 어두워졌다. 동해 용의 짓이므로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망해사를 지으라 명하였더니 구름이 걷히고 동해 용의 일곱 아들이 나와 춤을 추었다고한다. 구중 하나가 왕을 ?라나서길래 미녀와 짝지어주고 ‘급간’이라는 벼슬도 주었따. 그가 바로 처용이다. 어느날 처용은 자신의 아내가 역신과 함께 잠자리에 든 것을 목격하고는 화를 내기는 커녕 노래를 지어부르며 춤을추었다고한다. 그러자 역신이 처용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후부터 백성들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문간에 붙여서 귀신을 물리쳤다고 하다. 이떄 처용이 춘 춤이 처용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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