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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imagefile
id: 경주이야기
11536 2009-05-08 23:34
경주는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만큼 유물과 유적이넘쳐나는 곳이다. 치밀한 계획이 없거나, 어지간히 발품을 팔지 않으면, 나중에는 기억하기도 힘들다. 신라의 알짜배기 유물을 체계적으로 마아 놓은 국립경주 막물관은 경주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과 정보를 쉽고도 가치있게 알려주는...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 imagefile
id: 경주이야기
12103 2009-05-09 10:52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대종으로 봉덕사종혹은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신라 제 35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다가 36대 혜공왕 7년(771년)에 완성한 대종이다.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고 오직 하나 에밀레종이 있을 뿐이다." 라는 격찬을 받을 정도로 장중하...  
분황사 분황사
id: 경주이야기
9180 2009-06-06 23:31
원효스님과 자장스님의 법열이 느껴지는곳 분황사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3년(634년)에 건립되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인 원효대사와 자장스님이 계셨던 절이다.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천수대비관음보살 그림음 여험이 있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경덕왕때 희명이란 여인의 다섯...  
구황동당간지주 구황동당간지주
id: 경주이야기
7260 2009-06-06 23:30
634년 선덕여왕3년 창건된 분황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통일 신라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황룡사지와 분황사 사이에 우뚝 선 돌기둥이 두개가 있다. 멀리에서도 절의 행사나 위치를 알아볼수 있도록 깃발을 높이 매단다는 기둥이다. 이를 당간지주라고 하는데 구황리 당간지주는 당...  
황룡사지터 황룡사지터
id: 경주이야기
8820 2009-06-06 23:29
동양 최대의 가람터 황룡사지 (사적 제6호) "텅 빈 충만"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싶은 이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곳! 황룡사가 계획된것은 진흥왕(540~576) 때 일이다. 불교를 받아 들인 법흥왕이후 신라 왕들은 불교에 심취했다. 진흥왕은 말년에 스스로 머리를 깍고 승려 처럼 생활했으...  
임해전지 임해전지 (안압지)
id: 경주이야기
8481 2009-06-06 23:13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674년 궁안에 큰 연못을 파고 그안에 세개의 산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고 갖가지 새와 짐승들을 길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아쓴다. 그저...  
대릉원 경주 황남리 고분군
id: 경주이야기
10917 2009-06-06 23:12
경주 시내 한가운데 약 12만 6,500㎡, 그 너른 땅위에 신라시대 미추왕릉을 lfht하여 23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남아있는 고분 말고도 무덤 자리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봉분이 있는 무덤 위주로 공원화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모두 박무로간으로 옮겨지고 출토...  
천마총 천마총
id: 경주이야기
8942 2009-06-06 23:11
신라 고분이 도굴을 피해 지금까지 견딜수 있었던 것은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덕분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거나 땅 위에 돌을 깔고, 나무로 된 덧널(곽)을 놓은 다음, 그 안에 널(관)을 넣고 냇돌로 나무 널을 덮고 나서 다시 그 위...  
첨성대 첨성대
id: 경주이야기
7101 2009-06-06 23:10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용도로 건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천무을 관측하던곳이 아니라 천문대를 상징하는 기념탑이 아니었나 추정하기도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이라고도 하다. 그런가 하면 사방 어디에...  
계림 계림
id: 경주이야기
5249 2009-06-06 23:07
“숲으로 가보니 그곳엔 금빛으로 빛나는 궤짝이 나무에 걸려 있고 그 아래엔 흰닭이 울고 있었다.” 전설 때문일까?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자리잡은 울창한 숲은 신비감이 더욱짙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신라건국 초기로 가보자. 탈해왕이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숲으로 사람을 보...  
월성 월성
id: 경주이야기
10058 2009-06-06 23:06
<삼국사기>에 따르면 “박혁거세 21년에 궁을 만들어 ‘금성’이라 불렀으며, 새로 쌓은 월성 북쪽에 만월성이 있어었다”고 한다. 지금의 월성에는 아무런 건물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숲이 우거지고 텅 빈 뜰에 잔디가 깔려 있을 뿐이다. 예전의 금성이나 만월성이 어디인지 정확히...  
석빙고 석빙고
id: 경주이야기
7413 2009-06-06 23:05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  
경주향교 경주향교 file
id: 경주이야기
4747 2009-06-06 23:04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신라시대의 교육기관이 국학이다. 국학은 신무왕2년(682)에 세워졌는데, 지금의 경주향교 자리가 바로 국학이 있던 자리다. 고려 때에는 향학으로 조선 에는 향교로 이어졌으나 배움터로서 이만한 전통을 갖기가 쉽지 않겠다. 경상북도 내에 서는 가장 큰 ...  
경주월정교지 경주월정교지 file
id: 경주이야기
6706 2009-06-06 23:04
삼국사기>에는 “경덕왕 19년 (760), 궁의 남쪽 문천 (현재의 남천)에 춘양, 월정교 두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왕궁인 월성에서 남쪽 연결 통오로 이용되었을 것이며, 고려 충령왕 6년(1280)에 중수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족히 520년이상 존속되었을 것으로 본다...  
오릉 오릉 file
id: 경주이야기
5868 2009-06-06 23:03
크기도 간격도 일정치 않게 그야말로 오순도순 마주누운 고분 다섯기 박혁거세와 부인 알영, 2대 남해, 3대 유리, 5대 피사가 붇혔다고 전해진다. 만약 사실이라면 신라의 초기 임금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오릉이 다섯 긴의 능이 아니라 박혁거세의 능이라고도...  
노서리석불입상 노서리석불입상 imagefile
id: 경주이야기
4942 2009-06-06 23:01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느데 거렇게 한 사람들은 아들을 낳았을까? 코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없고 다리도 땅 소 깊이 묻혔다. 그래도 당당하 기세를 잃지 않은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이다. ‘남향사’라는 절터로 추정되나, 지금은 노서동 어느 회사의 주차...  
김동리생가 김동리생가 file
id: 경주이야기
7014 2009-06-06 23:00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집성촌 마음에 사는 모화는 술을 즐겼고, 바깥출입이 잦았다. 집으로 올때면 덩실 덩실 춤을 추며 ‘꽃님’을 불렀다.” 한국 문확계의 거목으로 평가 받고 있는 김동리 (1913~1995). 그의 소설적에는 경주가 자주 등장한다. 그가 태어나 문학작품을 하던 고이 ...  
예기소 예기소 file
id: 경주이야기
5949 2009-06-06 22:59
경주의 중 하천인 복천 서천 2개 물줄기가 합쳐지면서 깉은 소(예기소,동국대 경주캠퍼스앞)를 만든다 본래 풍광이좋았지만, 예기소는 김동리 소설 <무녀도>가 등장하여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은 곳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모화가 비명에 간 부잣집 며느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예수 귀...  
경주읍성 경주읍성
id: 경주이야기
5161 2009-06-06 22:58
옛 근화여중고 근처에 고려 현종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읍성의 동쪽 성벽 일부분이 복원되어 있다. 성벽을 이루고 있는 돌하느의 크기가 가로 40~50cm, 세로 20~30cm정도니 메우 견고했던 것으로 짐작되다. 조선시대에는 둘레가 2,400m에 이르고 동.서.남.북 각각에 성문이 자리잡...  
노동리고분군 노동리고분군 imagefile
id: 경주이야기
4867 2009-06-06 22:50
경주를 가장 독특하게 만드는 풍경중의 하나가 고분군이다. 대표적인 고분군이 대릉원인데, 이곳이 미용실에서 한껏 모양을 낸 도시처녀 같은 느낌이라면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는 노동리 . 노서리 고분군은 수더분한 시골처자같다. 집채보다 더 큰 천년 전고분이 21세...  
노서리고분군 노서리고분군 file
id: 경주이야기
5442 2009-06-06 22:48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 동쪽마을은 노동동 길 서쪽마을은 노서동이 되었다. 길좌우에 작은 산만큼이나 큰 무덤들이 잇대어 있다. 노서동쪽에 있는 것이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쌍상총, 은령총, 천마총등을 비롯한 14기의 고분이다. 노서리고분군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금관총...  
황오리고분군 황오리 고분군 imagefile
id: 경주이야기
6001 2009-06-06 22:46
경주시내에 있는 평지 무덤들 가운데 동남쪽 황오동 일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이다. 일제시대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70여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10여기의 무덤이 흩어져 남아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건물을 지을 때 자주 무덤 흔적이...  
천관사지 천관사지 file
id: 경주이야기
5802 2009-06-06 22:46
청년시절 김유신이 천관녀를만나 사랑에 빠져 하루 수련이 끝나면 천관녀를 찾아가곤 했느데, 어머니가 이를 알고 꾸중하자,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느날 말이 술 취한 김유신을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가자 김유신은 말의 목을 베었고, 천관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  
고선사지삼층석탑 고선사지삼층석탑
id: 경주이야기
6453 2009-06-06 22:45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  
재매정 재매정 file
id: 경주이야기
6261 2009-06-06 22:43
신라의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이다.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이 일대가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김유신 장군이 오랜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오다가 다시 전쟁터로 떠날 때, 자신의 집 앞을 지나면서 가족들을 보지도 않고 우물물을 떠오게...  
황오동삼층석탑 황오동삼층석탑 file
id: 경주이야기
5909 2009-06-06 22:41
사자사(獅子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탑으로, 경주역을 이전할 때 그 기념으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는 4단...  
경주교동최씨고택 경주교동최씨고택 file
id: 경주이야기
6273 2009-06-07 22:04
가옥은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月城)을 끼고 흐르는 남천(南川)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사랑채·안채·사당·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안채는 'ㅁ'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