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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지역
  • 경주교동최씨고택

    가옥은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月城)을 끼고 흐르는 남천(南川)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사랑채·안채·사당·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

  • 황오동삼층석탑

    사자사(獅子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탑으로, 경주역을 이전할 때 그 기념으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 ...

  • 재매정

    신라의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이다.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이 일대가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김유신 장군이 오랜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오다가 다시 전쟁터로 떠날 때, 자신의 집 앞을 ...

  • 고선사지삼층석탑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 천관사지

    청년시절 김유신이 천관녀를만나 사랑에 빠져 하루 수련이 끝나면 천관녀를 찾아가곤 했느데, 어머니가 이를 알고 꾸중하자,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느날 말이 술 취한 김유신을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가자 김유신은...

  • 황오리 고분군

    경주시내에 있는 평지 무덤들 가운데 동남쪽 황오동 일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이다. 일제시대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70여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10여기의 무덤이 흩어져 남아있다. 그러...

소금강산
  • 헌덕왕릉

    제 41대 헌덕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본래 쾌릉이나 흥덕왕릉처럼 문인석 무인석 돌사자 12지신상을 새긴 호석등을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왕릉이었는데, 인근 북천의 범람으로 무덤 ...

  • 소금강산

    경주 벌판에 야트막하게 솟은 산이 소금강산이다. 경주의 남쪽에는 남산이 장엄하게 벌리어 있고, 서쪽에는 선도산과 송화산이 솟아 있으며, 도옥엔느 명활산과 토함산이 있다. 신라의 북쪽을 지킨다. 하여 '북악' 이라고도 불렸다. 사로...

  • 동천마애삼존불상

    소금강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듬직하게 자리잡은 자연암석에 새겨진 삼존불상이다. 보존 상태는 좋지 않지만 얕게 돋을새김한 솜씨가 뛰어나다. 동천마애삼존불상표지문 이 불상은 겨주의 북쪽 소금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겨간 곳에...

  • 경주간묘

    26대 진평왕이 사냥을 좋아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자 신하의 김후직이여러번 간하였다. 그래도 왕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자 김후직은 병이나서 자리에 누웠으나 이를 잊지 않고 유언하기를 "내가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

  • 백룔사

    법흥왕은 불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가 여간 거센 것이 아니었다. 이에 이차돈이 나서서 "비상한 사람이 있고서야 비상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며 자신의 목을 베어 여러사람의 반대를 잠...

  • 굴불사지석불상

    소금강산 기슭 백률사바로 아래쪽에 있다. 절은 35대 경덕왕때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절터에 불상만이 남아있다. 꽤 큼직한 자연 암석의 사방에 조각된 불상은 그 독특한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이처럼 사면에 조각된 불상을 ‘사면...

대표유물
포석정
  • 배리석불입상

    부처의 세계에도 나이가 있을까? 이곳 불상들은 천진한 느낌이 든다. 국립경주박물관에도 ‘애기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장창곡 출토 석조 삼존불상이 있다. 미술사가들은 이 두불상과 흔히 ‘감실붗’라고 부르는 불곡석불좌상을 남산에서 ...

  • 지마왕릉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성은 박씨로서 파사왕의 아들이다. 무덤의 모양은 비교적 규모가 큰 둥근무덤으로 남산에 뻗은 경사면의 높은 곳에 만들었으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 배리윤을곡마애불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여러 계곡 가운데 하나인 윤을곡(潤乙谷)의 ㄱ자형 바위벽에 새긴 불상이다. 동남향한 바위면에 2구, 서남향한 바위면에 1구를 새겨 삼존불(三尊佛)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배치가 매우 특이하다. 중앙의 불상은...

  • 포석정

    '신라의 역사는 남산에서 시작하여 남산에서 끝맺었다'고 한다.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나정'과 신라 55대 경애왕이 견훤에게 생포되어 변을 당했다는 '포석정' 이 남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박혁거세가 나라를...

  • 창림사지

    박혁거세가 탄생한 후 최초로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따. 그러나 현장에는 궁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삼층석탑 2기, 아주 이색적인 모습의 쌍귀부 주춧돌 등 창림사 흔적만 있다. 이곳에서 '창림사'라고 글씨를 새긴 기...

  • 남간사지

    남간사는 창림사와 더불어 남산 일대에서는 가장 큰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살던 '일념'이라는 스님이 이차돈의 목숨을 바쳤다는 내용을 적은 <촉향분예불결사문>이라는 글을 지어 이차돈의 순교 사실을 널리 알렸다고 한다. 주...

삼릉
  •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계곡으로 약 300m쯤 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앉아 계신다. 현재 높이가 1.6m되고 무릎 너비가 1.56m되는 큰 좌불이다. 근년까지도 계곡에 묻혀 있던 것을 파내어 지금 장소에 앉혀 ...

  • 용장사곡석불좌상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三道)가 있고 어깨는 넓지...

  • 천룡사지삼층석탑

    천녀와 용녀라는 딸들을 위해 지은 절이라 ‘천룡사’라 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당나라의 사신이 “천룡사를 파괴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는 기록을 보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절로 추정된다. 무너진 상태로 있던 탑에 부족...

  • 침식골석불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백운암동편의 침식골에 있는 이 불상은 현재 머리 부분이 없어졌으나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불상의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 열암곡석불좌상

    무너져버린 연꽃좌대, 불두도 없이 바닥에 내 려앉은 불상, 조각나 흩어진 배 모양의 광배.. 열암곡석불좌상의 모습이다. 어딘가에 불두가 있어서, 짝을 맞춘다면, 남산에서는 제일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미륵곡 보리사 석불좌상을 ...

통일
  • 남산부석

    바위가 허공에 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해서 부석이라 불리는 남산부석은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양같다 해서 버선바위 라고도 한다. 국사골인 이곳의 바위들은 그 모양이 기기묘묘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불국토를 꿈꾸던 신라인...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바위를 약간 깍아내 둥근 감실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마애보살상을 모셨다. 마애보살상은 연꽃대좌 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마치 구름을 타고 유희하는 듯하다. 유난히 편안해보이는 것은 대부분결가부좌하는 석불상과 달리 오른...

  • 칠불암마애석불

    높다란 암봉과 소나무 푸른하늘, 그앞에 반구형의 바위가 하나 있고, 앞에는덩그러니 놓인 바위하나가 있따. 한석공이 곰곰이 생가가다 정으로 바위를 꺠기 시작해따. 얼마쯤 지났을까 덩그러니 놓인 바위는 면마다 부처님이 자리를 잡았고...

  • 남산리삼층석탑

    신라시대의석탑은 대웅전 앞에 똑같은 삼층석탑 두기를 나란히 놓는(쌍탑) 방식 일반적이다. 그런데 불국사의 쌍탑(석가탑과 다보탑)은 그렇지 않다. 의도적으로 대칭적인구조를 깨뜨리면서 새로운 조화를 추구한다고 할까 남산리삼층석탑도 마...

  • 서출지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

  • 통일전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한 태종무열왕,문무왕,김유신의 영정을 모시고 그 정신을이어 남북 통일도 이루자는 염원으로 1977년 건립되었다. 초 .중등학생들이 경주수학여행의필수 코스로 짜여진다. 통일전에 서 남산을 오르는길...

낭산
  • 보문리사지

    경주의 동쪽 관문에 해당하는 명활산과 낭산사이에 자리한 너른 들판이 보문평야이다. 절터의 대부분이 넓은 논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보문동 마을 앞 들판에 석조, 금당터, 목탑터, 석등받침돌 등이 남아있다. 벼가 자라고 있는계절에는 ...

  • 연화문당간지주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의 입구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를 당(幢)이라 하며, 이를 달아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이 장대를 양옆에서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의 ...

  • 설총묘

    신라 경덕왕 때의 학자인 설총의 묘이다. 아버지는 원효이고 어머니는 요석공주이며 출생시기는 태종무열왕대인 654∼660년 사이로 짐작된다. 나면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경사에 널리 능통하였다고 한다. 신라 유학의 종주가 되었으며, 후에...

  • 진평왕릉

    거대하지도 않다. 아무런 시설 없이둥글게 흙을 쌓은 평이한 능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주변의 논밭이며, 큰 소나무와 주변의 고목들이 봉분과어우러...

  • 구황리삼층석탑

    효소왕 1년(692)에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황복사지석탑’ 이라 불리기도 한다. 706년에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탑 안에 사리와 불상등을 넣어, 두 선왕의 명복을 빌고왕실의 번영을 기원하였다. 이처럼 연...

  • 낭산마애삼존불

    경주 낭산 서쪽 기슭의 바위면에 삼존불(三尊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표면이 거칠고 균열이 심한 상태이다. 가운데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본존불이 있고, 양 옆으로 협시불이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살이 찐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 ...

불국지역
  • 성덕왕릉귀부

    통일신라 성덕왕(재위 702∼737)의 능 앞에 세웠던 비석의 받침이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효소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비는 원래는 비몸과 그 위에 머릿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 신라성덕왕릉

    경주에서 불국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동남쪽 구릉 소나무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1∼737)의 무덤이다.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본명은 융기이다. 당과 적극적인 교류를 하였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신라의...

  • 효소왕릉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무덤이다. 신문왕(재위 681∼692)의 아들로서 삼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발전이 있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서시전과 남시전 등 시장을 열어 물품의 유통을 쉽게 하였다. 높이 4.3m, 지름 10.3m의 둥글게 ...

  • 숭복사지

    숭복사터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으로, 두 탑 모두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어서, 아래·위층 기단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특히 위층 기단에는 기둥 조각 사이의 면마다...

  • 감산사지

    감산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1965년 다시 세웠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이나, 현재 탑신의 2·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

  • 마동사지삼층석탑

    불국사 서북쪽 언덕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4매, 위층 기단은 8매의 돌로 짜여져 있다. 각 층 모두 모서리에 하나씩,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본...

보문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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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야리삼층석탑

    자연암반을 바닥돌 삼아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2층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3층 몸돌은 없어졌다. 지붕돌은 흙벽돌로 쌓아올린 전탑(塼塔)의 양식을 모방하여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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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회유토기요지

    요지란 도자기 토기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화산외유토기요지는 신라토기를 구워내던 곳으로 그당신의 가마가 있던 자리이다. 주벼밭에서 지금도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된다. 발견되는 토기들은 대부분 7~8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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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암공부조묘

    조선 중기의 의병장 운암 최봉천(1564∼159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운암 최봉천은 선조 21년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조카 진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여천·울산·경주성 탈환에 많은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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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곡동물천리유적

    국내에서 발굴된 토기와 숯 생산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가마, 채토장, 공방터, 건물터, 생산도구등이 두루 발굴또는 확인되어, 우리나라의 요업 기술 발달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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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오정

    종오정 일원은 조선시대 영조(재위 1724∼1776) 때 학자인 최치덕(1699∼1770)의 유적지이다. 최치덕이 영조 21년(1745)에 돌아가신 부모를 제사지내려고 일성재를 짓고 머무르자, 그에게 학문을 배우고자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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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지

    무장사터는 경주시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깊은 산골에 있으며,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병기와 투구를 매장한 곳이라는 뜻으로 ‘무장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스러운 시대를 열겠다는 문무왕의 결연한 의...

서악권
  • 신선사마애불상군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중턱에 이르면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

  • 여근곡

    선덕여왕의 총명함과 슬기로움을 전해주는 세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하나가 옥무곡에 매복해 이던 백제 병사들을 물리 쳤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나온 옥문곡은 산의 생김새가 여성의 음부와 비슷하다 하여 '여근곡'이라 불린다. 어느날...

  • 용명리사지삼층석탑

    명장리삼층석탑’이라 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용명리사지탑’이라는 이름 역시 확실하지 않다. 석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가...

  • 금척리고분군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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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생가

    시인이나 작가들은 고유한 운율로 저마다의 정서를 표현한다. 시인 박목월 (1916~1978)은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고 했다. 그 무 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라며 자신의 고장말...

  • 서악리마애석불상

    선도산 정상 가까이의 큰 암벽에 높이 7m나 되는 거구의 아미타여래입상을 본존불로 하여, 왼쪽에 관음보살상을,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상을 조각한 7세기 중엽의 삼존불상(三尊佛像)이다.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 아미타여래입...

북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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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원리오층석탑

    나원리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 진덕여왕릉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의 무덤이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2번째 여왕으로 본명은 승만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과 월명부인 ...

  • 오류리등나무

    등나무는 덩굴식물로 꽃은 보통 가지 끝에 달려서 나오고, 5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핀다. 오류리의 등나무는 4그루가 있는데, 2그루씩 모여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1∼12m, 둘레는 각각 0.24m, 0.28m,1.72m, 0.60m정도 되는 큰 덩굴...

  • 손순유허비

    42대 흥덕왕떄 효자로 이름 높았던 손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유허비이다. 손순이 아내와 품을 팔며 어렵게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린 아들이 번번히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이었다. 손순은 "아이는 다시 얻을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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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제우묘

    최제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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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제우생가터

    최제우생가터

동해지역
  • 고유섭선생대왕암비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길러보아라 태종무열왕의 위업과 김유신의 훈공이 크지 아님이 아니나 문무왕의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경주의 유적에서 찾아야 할것이니 무엇보다도 경주...

  • 석탈해왕탄강유허

    신라 제4대 탈해왕(재위 AD 57∼80)이 탄생한 곳이다. 신라의 3대 왕성인 박·석·김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여 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 왕비가 임신 7년만...

  • 장항사지

    토함산 동남쪽 계곡의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절터가 있는 계곡은 대종천의 상류로 감은사터 앞을 지나 동해로 흘러간다. 절을 지은 연대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장항리라는 마을 이름을 따...

  • 골굴암마애여래좌상

    기림사 골짜기에 위치한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불이다.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

  • 골굴사

    한국에도 돈황석굴이 있다. 바위산에 팬 굴의 모습이 마치 해골 같아 골굴이라 이름지은 골굴사다. 깎아지른 절벽, 산더미 같은 바위에 움푹움푹 패인 십여개의 동굴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은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파냈다) 이이 있고, ...

  • 기림사약사전

    기림사는 함월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세웠다. 기림사란 명칭은 부처가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인도의 기원정사를 뜻한다.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불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