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453-1 사적 181호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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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화 | |
입장료 | 무료 |
교 통 (버스) | 10, 11, 600~609 |
주차장 | 무료 |
경주는 시내 중심가는 물론이요 야산자락이나 구릉에는 반드시 귀족이나 왕릉으로 여겨지는 무덤들이 자리한다. 낭산 자락 아래에도 왕릉들이 즐비하다. 신문왕릉, 효공왕릉, 진평왕릉 676년 삼국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아들이 31대 신문왕(681~692)이다. 반대 세력을 억누르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도입하였다.
설총이 아첨하는 신하를 화왕(모란) 충언하는 신하를 할미꽃에 견주어 간신을 조심하고 충신을 가까이 두라는 내용의 <화왕계>를 지어 바치자, 신문왕이 충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둥근 봉분 둘레를 벽돌처럼 다듬은 돌 5단을 쌓고, 갑석을 덮은뒤, 석축을 지탱하기 위한 삼각형의 돌 44개를 기대어 놓았다. 고분 주변에 십이지신상을 두르기전 단계의 양식으로 주목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을 낭산 동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였을 뿐만아니라, 효소왕릉이 망덕사의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므로, 신문왕릉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효소왕의 능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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