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가 탄생한 후 최초로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따. 그러나 현장에는 궁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삼층석탑 2기, 아주 이색적인 모습의 쌍귀부 주춧돌 등 창림사 흔적만 있다. 이곳에서 '창림사'라고 글씨를 새긴 기와가 발견되었다.
 순조 24년(1824)에는 탑이 도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사리장치가 드러났는데, 여기에서 '무구정탐원기'가 새겨진 동판인 나왔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가 당시 현장에 와서 직접이를 보고 내용을 적어놓은 것이 남아있어 탑의 조성연대를 정확히 알수 있게 되었다. 창림사지삼층석탑이 세워진 시기는 문성왕 17년(855)이다.
 한편, 둥글둥글한 아기의 손과 발처럼  도톰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양의 쌍귀부는 마치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아이의 모습과도 같아 익살스럽다. 그러나 아쉽게도 목 부분이 사라지고 없다. 쌍귀부의 등에는 당대의 명필인 김생(711~791)이 쓴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원나라 조자앙이라는 학사가 이글씨를 보고  '자획이 깊고 법도가 있어 비록 당나라의 이름난 조각가라도 그보다 더 나을수 없다'며 감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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