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 한가운데 약 12만 6,500㎡, 그 너른 땅위에 신라시대 미추왕릉을 lfht하여 23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남아있는 고분 말고도 무덤 자리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봉분이 있는 무덤 위주로 공원화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모두 박무로간으로 옮겨지고 출토된 무덤자리와 껴묻거리들이 공개된 천마촌은 신라시대 무덤 내부를 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댓잎군사의 전설 이야기가 재미있는 미추왕릉, 부부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황남대총 등이 대릉원의 대표 고분이다. 크고 작은 신라시대 무덤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사연들, 그 무덤과 무덤사이를 오가며 마주하는 풍경들이 편안하고 고즈넉하여 사시사철 언제 찾아가도 만족감을 준다.
1970년대에 정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98호분 (황남대총)을 발굴한뒤 내부를 복원하여 교육및 연구자료로 삼고자 했으나 그와 같은 큰 고분을 발굴해본 경험이 없는터라, 그보다 작고 가까이에 있는 155호분을 발굴하여 경험을 쌓으려 했던 것이 지금의 천마총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 모두 1만 5,000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고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특히 하늘을 날아오르는 백마를 그려 놓은(천마도) 다래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말’ 이 아니라 ‘기린’ 을 그린 그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라시대의 그림으로는 매우 귀중한예이다. 다래는 말 옆구리에 진흙 같은 것이 튀지 않도록 달아매는 장치이다.
황남대총은 두 개의 능이 붙어 있는 독특한 외형이다. 북쪽의 능이 여자, 남쪽 능이 남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 길이가 80m, 높이가 23m로, 신라고분 가운데 가장크다. 1973년 7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발굴되었는데, 고분 발굴에 동원된 연인원수가 3만 2800명이었다고 한다. 북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 무기, 토기류가 3만 5,000여점, 남분에서는 무기가 대분분인 2만 2,000여저의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유물은 유리잔 지금은 유리 제품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을 터이다. 이들은 서역을 통해 신라에 수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미추왕릉은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린 신라 13대 미추왕의 능이다. 능앞에 대나무밭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알고 보니 미추왕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14대 유례왕 때의 일이다. 이서국이 쳐들어와 곤경에 빠졌는데, 어디선가 귀에 대나무잎을 꽂은 병사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적을 무찌르곤 사라졌다. 조사해보니 그 대나무잎은 미추왕릉 앞에 높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이후 미추왕릉을 죽릉 이라고도 불렀다. 대릉원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서 장사지냈다”고 한데서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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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4/10] 천마총 by 경주이야기 (8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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