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대종으로 봉덕사종혹은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신라 제 35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다가  36대 혜공왕 7년(771년)에 완성한 대종이다.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고 오직 하나 에밀레종이 있을 뿐이다." 라는 격찬을 받을 정도로 장중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 소리 뿐만 아니라 외형도 유려한 형체감을 띄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동종으로 손꼽히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불교가 가장 융성하였던 시기는 성덕왕(33대), 효성왕(35대)시대이다.
<삼국유사>에는 성덕왕이 승하 한 후  효성왕 2년(738년)에 선고  성덕왕의 명복을 기원하는 사찰을 건립하였고,경덕왕도 선왕의 명복을 받들려는 효성에서 동(청동) 12만 근을 모아 주종사업을 , 그 다음혜공왕이 부업을 이어 혜공왕 7년(771년)에 이종의 완성을 보았다고 하였으며,
'성덕왕이 태종대왕을 위하여 봉덕사를 창건하였다' 라고 하였다. 봉덕사의 위치는 구전에 따르면 경주 북천의 남쪽이라 하나 정확한 장소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찰건립에서  범종 왕성까지 무려 34년의 긴 세월이 흘렀는데, 이로서 그간 주종을 위한 우여곡절의 난관들이  많았음을 짐작할수가 있다.
그리고 왕가의 원찰로서 관직제를 설정하여 관리한 웅대하고 장엄한 가람이었으므로,당시의 봉덕사 범종을 다룰 수 있었던 사찰이라면,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가를 추정 할 수 있을 것이다,
 봉덕사종은 조선조 세조 6년(1460) 인근의 영묘사(경주시 사정동)에 옮겨 걸었다가, 중종 초년(원년 내지 2년)에 경주성물종으로 사용되어 이곳에서 480년을 경과하였다.
1915년 9월경주고적보존회에서 종과 종각을 봉황대에서 구 경주박물관에 이전 보존하였으며, 지금은 현제 위치의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자신의 대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아들인 혜공왕 때 완성을 보았다. 처음에는 봉덕사에 달아두었다 하여 '봉덕사종'이라 불렀고 , 전설을 따라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렀다.
성덕대왕신종전설은 다음과 같다. '온 백성의 성의를 모아 대종을 만들기 위해  전구그이 고을마다 시주승이 돌았다. 결국 백성들의 정성을 모아 종을 만들었으나,어찌된 일인지 종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 시주승이 어느가난한 집의 문을 두드렸을때, 어느 아낙이 "우리 집에서시주할 것이라고는 이 아이밖에 없소"라고 희롱삼아 말한 일을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 아낙으로 인해 생긴 부정이라 여기고, 아낙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서는 종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았다. 과련 그 아낙의 아이를 끓는 쇳물 속에 바쳤으니,  종이 훌룡하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라는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것이다.


봉덕사종은 구경 2,227mm,전체놓이 3,663mm, 두께 203mm, 무게 18.9톤 음관 놓이 648mm의 거대한 종으로서 종체의 규모에 있어서나,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인 최상의 걸작품이다. 아니 동양의 청동문화의 정수를 나타내는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기의 명종이다. 
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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