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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文武王)이 부왕인 무열왕(武烈王)과 더불어 삼국통일의 주역이었지만 문무왕에게 건국이래 동(東)에서 시시때때로 침입하던 왜구는 항상 걱정이었다.
그리하여 이같은 왜구를 염려한 대왕은 그 대응책의 하나로 예로부터 왜구의 상륙지점으로 지목되어 왔던 동해구에 국방의 뜻을 지닌 국찰(國刹)을 착공하기로 했다.는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를 막겠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무왕은 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왕위에 오른지 21년만에 세상을 떠나니, 그의 자리를 이어 받은 신문왕(神文王)이 그 뜻을 이어 이듬해인 682년에 절을 완공하여 감은사(感恩寺)라 이름하였다. 당초에는 진국사(鎭國寺)라 불렀다고 하는데, 진국(鎭國)은 진호국가(鎭護國家)의 준말이며, 또한 왜구를 물리치려는 의미인 '욕진왜병(欲鎭倭兵)'의 뜻과도 서로 잘 맞는다.
감은사(感恩寺)로 사명(寺名)을 고친 것은 대왕의 별세 후 앞바다에 장사지냈기에 대왕의 은혜를 감축(感祝)하기 위함이었다고 추정된다. 이는 불심을 통한 호국이라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는 한편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와의 명복을 비는 효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감은사지 유적 안내문
사적 제31호 국보11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앙북면 용gameunmain.jpg당리 55-1번지 
감은사는 신라 문무대왕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후 부처의 힘으로 왜국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다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자 아들인 신문왕이 그 뜻을 좇아 즉위한 지 2년 되던 해인 682년에 완성한 신라 시대의 사찰이었다. 문무대왕은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바로 대왕암이며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사찰을 완성하고 이름은 감은사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부터 2년에 걸쳐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얻어진 자료를 통해 창건 당시의 건물 기초대로 노출 정비한 것이며, 아울러 금당의 지하에는 바다용이 된 문무대왕의 휴식을 위한 상징적인 공간을 마련한 특수 구조와 동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고 하는 흔적도 밝혀놓은 것이다. 우뚝 솟은 두 삼층석탑은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으로서 수십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 조립식으로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 13m에 이르는 신라 삼층석탑중 최대의 것이다. 감은사는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의 뜻과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예 감사해서 지은 효, 즉 충효의 정신이 깃들인 유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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